날카로우면서도 따뜻한 모성의 힘, 루이즈 부르주아 회고전
![루이즈 부르주아의 대표작 『마망(Maman)』 거대한 거미 조각상으로, 스페인 빌바오 구겐하임 미술관 외부에 설치된 모습입니다.[퍼블릭 도메인]](https://santanews.cdn.presscon.ai/prod/140/images/20250830/1756503768282_294743517.jpeg)
거대한 청동 거미 조각이 우리 앞에 서 있다. 높이 9m, 지름 10m에 달하는 ‘마망(Maman·엄마)’은 프랑스계 미국 작가 루이즈 부르주아(1911~2010)가 어머니에게 바친 작품이다.
가녀린 다리로 하늘을 받치는 모습은 위협적이면서도 동시에 보호의 기운을 풍긴다. 거미줄을 짓는 존재로서의 거미는 부르주아에게 바로 자신의 모친을 상징했다.
이 조각은 세계적으로 6점만 제작된 대형 작품 가운데 하나로, 현재 경기도 용인 호암미술관 수변공원에 설치돼 있다. 오는 8월 30일부터는 호암미술관에서 대규모 회고전 **〈루이즈 부르주아: 덧없고 영원한〉**이 열려, 조각과 회화, 설치작품 등 총 106점이 전시된다. 국내에서는 2000년 국립현대미술관 과천 전시 이후 무려 25년 만의 개인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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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년의 상처가 만든 모순된 모성 이미지
부르주아의 작품에는 항상 가족, 특히 어머니와의 관계가 깊이 배어 있다. 그녀는 열 살 무렵, 아버지의 불륜을 목격하며 큰 충격을 받았다. 가정을 지키기 위해 침묵을 택한 어머니의 모습은 어린 소녀에게 배신감과 동시에 존경심을 동시에 남겼다.
이 경험은 훗날 그녀의 작업 세계 전반을 지배했다. 작품 속 거미는 날카롭고 차갑지만, 동시에 자녀를 끝까지 지켜내는 강인한 모성을 상징한다.
전시에서는 대표작 ‘마망’ 외에도 1994년 설치작품 〈붉은 방(부모)〉, 소용돌이치는 알루미늄 조각 〈커플〉, 그리고 후기 회화 〈꽃〉 등이 소개된다. 〈붉은 방〉은 부모의 방을 자녀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구조를 통해 가족 내에서도 쉽게 이해할 수 없는 거리감을 드러낸다. 반면 〈꽃〉은 다섯 갈래 가지를 통해 가족 구성원을 은유하며, 평생의 모순을 화해하려는 작가의 후반기 태도를 엿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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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의식을 드러내는 예술, 심리적 자서전
이번 전시는 부르주아의 작업을 크게 ‘의식’과 ‘무의식’의 흐름으로 나누어 보여준다. 그가 남긴 수많은 조각과 회화는 단순한 미술작품이 아니라, 트라우마와 기억을 직면하며 쓴 심리적 자서전이라 할 수 있다.
그녀는 스스로를 페미니즘 작가로 규정하기를 거부했지만, 어린 시절의 상처와 불안을 예술로 끌어올린 솔직한 고백은 여성 예술가들의 목소리에 큰 영향을 주었다.
호암미술관 측은 “부르주아의 작품은 단순히 개념을 담는 것이 아니라, 파괴와 갈망, 치유의 감정을 시각적으로 드러내는 작업”이라며 “관람객이 작품을 통해 자신의 내면과 마주하는 체험을 하길 기대한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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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 건네는 위로
루이즈 부르주아는 삶 전반을 통해 가족과 모성에 얽힌 사랑과 배신, 집착과 화해를 작품으로 풀어냈다. 그래서 그의 작업은 예술을 넘어, 인간 누구나 겪는 관계의 상처와 치유 과정을 은유한다.
거대한 거미 조각 ‘마망’ 앞에 서면, 우리는 모순된 감정 속에서도 꿋꿋이 버틴 어머니의 모습, 그리고 상처를 예술로 승화시킨 한 인간의 용기를 동시에 느낄 수 있다. 이번 전시는 내년 1월 4일까지 이어지며, 동시대 관객들에게도 깊은 울림을 건넬 것으로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