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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의 눈으로 다시 피어나는 희망

서정규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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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정치판은 마치 조직폭력배의 패싸움터 같습니다. 저속한 언어와 과반수를 넘는 다수결로 자기편의 이득을 챙깁니다. 


삼권분립의 견제와 균형 원칙을 아예 깨고 들어가려 합니다. 선거철이 되어야 힘을 발휘하는 주권자 국민은 지켜보고 있지만, 지금은 딱히 힘을 쓸 수가 없습니다.

 

잘 되면 내탓 잘못 되면 조상 탓이란 속담처럼, 정치판은 서로 네탓이라고 삿대질입니다. 싸움질에 능한 자를 무조건 응원하는 SNS Site는 이런 싸움질을 부추기는 글이 쇄도합니다.

주인인 국민의 눈에는 심한 배신감이  어립니다.

 

사법부가 뭐하는 곳인가요? 
공화제 다수결 권력은 법치주의가 바로 서야 생명을 제대로 유지합니다. 사법부가 온존하게 유지되고, 공정하고 법리에 맞는 재판을 해야 삼권분립이 제대로 굴러가는 것입니다. 삼각형은 한변이 무너지면 생명이 없어집니다.


그런 사법부를 입법부와 행정부가 공격합니다. 축구경기에서 파울을 범해놓고, 되레  심판을 공격하는 모양새 입니다.

 

일부 대형 종교단체의 지도자들은 그 단체를 자식들에게 세습시킵니다. 마치 제가 잘나서 그 단체의 경제력이 그렇게 커진 줄로 착각하는 모양새 입니다. 염불에는 관심이 없고 잿밥만 노린다는 속담이 딱 들어 맞습니다.

 

몇몇 학술단체나 대학 등에서는 교수들이 제자를 성추행을 합니다. 요샛말로 갑질하는 더러운 작태입니다.

 

노동단체도 공정한 경쟁의 원칙을 벗어나 제 자식들에게 신의 직장을  세습시키려고 합니다.

 

"제탓이요 제탓이요 내탓이로 소이다" 김수환 추기경님의 행적은 종교를 떠나 국민적 추앙을 받으셨습니다. 지난 90년대 초반 내탓이요 운동이 전국적으로 번져나갔습니다.

 

맑은 가난은 탁한 부보다 가치가 더하다. 법정 스님의 무소유 명언입니다.

 

나는 우리 자손들에게 남겨줄 유산이 하나도 없다. "길을 가면서 꽃씨를 뿌리면 그 꽃의 선한 마음을 우리 다음 세대가 거둘 것이 아닌가?" 한경직 목사님의 유언입니다.

 

두 분의 무소유 신념과 실행이 가슴을 누르면서 나는 무엇을 하였는가 돌이켜 보게 만듭니다. 한 분의 내탓이요가 그리운 세태입니다.

 

그러나 세 분의 국가 지도자께서 유명을 달리하신 지금은, 제대로 된 국가 지도자가 없습니다.

대신 그자리에는 상대방의 마음을 헤집는 가장 저열한 언사만 난분분(難紛紛) 합니다. 

최악의 언사만을 구사해야  최고라도 되는 양 여기는 모양새입니다. 


자신의 부를 쌓기 위하여 물불을 가리지 않고 먹어 치우는 세태입니다. 자신의 순간적인 향략을 위하여 순진한 제자들을 농락합니다.

 

행정부 특수 정무직 공무원, 국회 특수직 공무원과 법원의 특수직 공무원들의 일한 대가는 누가 주는가요? 


누구 덕분에 생계를 이어가고 있습니까? 


하도 부정한 처사로 자칭 권력자가 되었으니, 국민의 세금은 발톱 속의 때처럼 작게 보이는지 모르겠습니다.
세금을 내는 주인을 장기판의 졸로 여기는, 그들의 처사가  국민들의 심사를 뒤틀리게 한지 오래 입니다.

 

종교단체나 학술 단체의 지위는 누가 그들에게 주었습니까? 다 일반 국민들의 신앙심과 향학열 덕택이 아닌가요?


정치판과 종교판에서 실망한 국민들이나 배움터에서 좌절하는 학생들이, 그들에게 실랄하게 비판하는 말을 알고 있는지나 모르겠습니다.

 

요즘 소위 국가지도자들은 고 김수환 추기경님 , 고 한경직 목사님과 고 법정 스님의 말씀과 행적을 되새겨 보아야 합니다. 
그길만이 주인인 국민에게 바르게 봉직(奉職)하는 길인 것입니다.

 

政者正也 子帥(솔)以正 孰(숙)敢不正
정치란 바르게 하는 것이다. 
그대가 솔선하여 바르게 한다면 누가 감히 바르지 않겠는가? 
논어 안연( 顔淵) 편에 나오는 공자님 말씀입니다.

부정, 탐욕과 교만 및 네탓이요가  만연한 세태처럼, 무덥고 요상한 구월 날씨 아래
不肖小生 감히 아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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