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으로 키운 땅, 희망으로 되돌리다
![푸르메소셜팜 부지를 기부한 이상훈·장춘순 부부. [사진제공 푸르메재단]](https://santanews.cdn.presscon.ai/prod/140/images/20251006/1759712797200_77795285.jpeg)
“제게 가장 큰 축복은 아들이 장애를 갖고 태어난 일이었어요.”
한 줄의 고백은 참석자들의 마음을 울렸다. 경기도 여주시의 넓은 들판 한가운데, 부드러운 햇살이 비추던 ‘푸르메소셜팜’ 착공식 현장이었다. 그날, 장춘순 여사는 남편 이상훈 회장의 손을 꼭 잡고 눈시울을 붉혔다.
그들이 세상에 내놓은 것은 단순한 ‘농장’이 아니었다. 그것은 수십 년간의 눈물과 인내, 그리고 ‘장애인도 당당히 일할 수 있는 사회’를 향한 한 부부의 결심이 담긴 땅이었다.
뒤틀린 운명 속에서 피어난 다짐
30여 년 전, 부부의 첫 아이는 남들과 다르게 성장했다. 백일이 지나도 몸을 뒤집지 않았고, 돌이 되어도 눈을 맞추지 않았다. 병원에서 “발달장애”라는 말을 들었을 때, 세상은 한순간에 멈춘 듯했다.
처음에는 서로를 원망했고, 곧 세상을 미워했다. 하지만 장 여사는 그 감정을 ‘강함’으로 바꾸기로 했다. 아이의 세상을 이해하기 위해 재활학과에 입학했고, 해외의 장애인 작업장을 찾아다니며 부모로서의 역할을 배웠다. 유럽의 농장에서 만난 청년들이 흙과 밀가루를 만지며 웃는 모습을 보고, 그녀는 깨달았다.
“우리 아이도 행복할 수 있겠구나. 흙을 만지며 살아갈 수 있다면.”
씨앗을 심다 — 가족의 농장 ‘우영농원’
시아버지가 평생 아껴 모은 여주 오학동의 2만 평 땅 위에, 부부는 열다섯 동의 비닐하우스를 세웠다. 살림집은 컨테이너였다. 남편은 회사를 경영하면서도 퇴근 후 매일 흙을 만졌다. 부부는 표고버섯과 인삼을 키웠고, 농업대학에서 배우며 새벽까지 책을 폈다.
하지만 현실은 냉정했다. 납품처에서 무시당한 날, 장 여사는 차 안에서 눈물을 삼켰다. “우리 아이가 이 세상에서 어떻게 버틸 수 있을까.” 그날 밤, 부부는 결심했다.
“이 농장은 우리만의 것이 아니라, 우리 같은 부모와 아이들의 희망이 되어야 해.”
‘우리의 땅’을 ‘모두의 땅’으로
그 무렵, 푸르메재단이 발달장애 청년의 일터를 세우려 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부부는 곧장 재단을 찾아가 말했다.
“아버지가 손수 가꾼 이 땅을, 우리 아들과 같은 아이들을 위해 써 주세요.”
그 결정은 여주 전체의 미래를 바꿨다. 재단은 SK하이닉스, 한국지역난방공사, 여주시와 손을 잡았다. SK하이닉스는 50억 원을 지원했고, GS리테일은 수확물의 판로를 책임졌다. 그렇게 ‘푸르메소셜팜’의 밑그림이 완성됐다.
청년들의 손으로 익어가는 방울토마토
부부의 조언으로 농장의 첫 작물은 방울토마토로 정해졌다. 손의 감각이 예민하지 않아도 키우기 쉽고, 상하지 않으며, 달콤했다. 자동 온습도 조절 시스템이 들어간 유리온실은 발달장애 청년들에게 안전하고 효율적인 일터가 되었다.
입사 경쟁률은 3대 1을 넘었다. 합격한 청년들은 토마토를 수확하며 동료와 웃고, ‘무이숲’ 카페에서는 쿠키와 커피를 만들며 사회와 연결되었다. 여주시에서는 이들에게 체험홈 아파트를 제공해 자립을 지원했다.
그중에는 부부의 아들, 덕희 씨도 있었다. 첫 월급을 받은 그는 웃으며 말했다.
“이 집에서 돈 버는 사람은 나밖에 없어요!”
그날 장 여사는 세상 그 어떤 말보다 행복했다고 회상한다.
세대를 잇는 나눔의 유산
농장의 기부 소식은 세대의 경계를 넘어 감동을 낳았다. 올해 아흔일곱이 된 장 여사의 시어머니 윤여영 여사는, 손자와 같은 청년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담아 성경을 세 권 필사해 재단에 보냈다.
“사랑이 없으면, 그 어떤 일도 소란한 꽹과리에 불과합니다.”
노트의 첫 장에 적힌 문장은, 이 가족이 살아온 이유를 대신 말해주었다.
행복은 나눔에서 익어간다
지금 ‘푸르메소셜팜’에서는 매일 같은 풍경이 반복된다. 청년들이 인사를 나누고, 웃으며 토마토를 나른다. 한때 세상과 단절돼 있던 이들이 서로의 이름을 부르고, 일터에서 자존감을 배운다.
장춘순 여사는 말한다.
“장애인이 행복하면, 모두가 행복합니다.”
그녀의 말처럼, 사랑으로 시작된 한 농장은 오늘도 ‘함께 사는 세상’을 향한 가장 따뜻한 증거로 자라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