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진강 사곡(思曲)
섬진강 물결은 오늘도 굽이쳐 흐릅니다.
그냥 흐르는 것이 아니라, 우리나라 현대사에서 가장 아팠던 기억을 지우려고 애쓰면서 영남과 호남을 품고 내립니다.
그 아픈 기억을 가슴에 품고 양대 지역이 서로 포용하고 때로는 경쟁하되, 나라를 먼저 생각하라고 외치면서 흐릅니다.
섬진강은 지리산을 돌아가면서 내립니다.
지리산은 그 옛날 동학 혁명 정신과 해방 후
소위 빨치산 유격대의 잔영이 서려 있는 영산(靈山) 입니다.
이제는 거의 사라져 가는 언어 빨치산은 프랑스어 *파르티잔(Partisan)*에서 유래한
*비정규 유격대원*을 뜻합니다.
그 말이 러시아어 발음 *빠르찌잔*을 따와서 빨치산으로 불린 것입니다.
섬진강의 수계와 그 수계의 가장 큰 축 지리산의 사상(思想) 흐름 역사를 살펴 봅니다.

1. 섬진강 본류와 지천
섬진강(蟾津江, 두꺼비 섬, 나루 진)은 전북 진안군 백운면의 데미샘에서 발원하여 호남 지방의 동부를 남서쪽으로 흐르다가, 경남 하동을 거쳐서 남해의 광양만으로 흘러 내립니다.
원래 섬진강은 사천(沙川)으로 불렸으나, 고려 우왕 시절 수십만 마리의 두꺼비 떼가 강가에 나타나 크게 울자, 이에 놀란 왜구가 도망쳤다는 전설에서 유래되어 섬진강으로 불렸다는 두꺼비 나루 설화 속의 이름 입니다.
1) 보성강
보성강은 섬진강의 가장 큰 지류 입니다. 전남 보성에서 발원하여 주암댐을 거쳐서 구례와 곡성 경계 부근에서 섬진강과 만납니다.
2) 요천
요천은 전북 장수에서 발원하여 남원 시내를 관통한 뒤, 섬진강 본류로 흘러 드는 섬진강 핵심 지천입니다.
3) 오수천
오수천은 임실과 남원 경계를 흐르며 섬진강 상류로 흘러 듭니다.
4) 화개천
지리산 자락에서 흘러 내려오는 맑은 물결이 섬진강 본류로 합류합니다.
이 개천은 노래로 유명한 하동의 화개장터를 감싸면서 그 앞에서 섬진강으로 합류합니다.
화개장터는 박경리의 대하 소설 토지의 주무대인 하동군 악양면 평사리와 함께 등장하는 하동의 시장터 입니다.
평사리는 넓은 들판이 귀한 경상도에도 불구하고 넓은 농지가 있어서, 소설 토지처럼 대갓집의 농지 소유가 가능한 지역입니다.

2. 섬진강에 얽힌 동학 농민 혁명
1894년 전봉준을 필두로 전라도 고부에서 터진 동학 농민 혁명의 불길은 섬진강을 타고 전라도와 경상도의 경계를 넘나들었습니다.
조선조 사∙농∙공∙상의 철저한 신분 제도에서 인내천(人乃天) 사람이 바로 하늘 이라는 천도교 동학혁명은 양반 계급을 제외한 민초들의 열렬한 지지와 동참 속에 들불처럼 번져 나갔습니다.
동학의 제2차 봉기 당시 남원 대회를 거쳐서 전남 순천에 자리 잡은 영호 대접주 김인배는 하동을 공략합니다.
그 하동 전투에서 관군과 토호들의 민포군을 격파하고 전승을 올려 기선을 장악했습니다.
그러나 근대식 무기로 무장한 일본군의 참전으로 참패를 했습니다.
수많은 동학 농민군들이 섬진강변과 그 주변 산골짜기에서 목숨을 잃었습니다.

3. 지리산 빨치산 활동
1984년 여순 사건의 잔류 세력과 6∙25 전쟁 중 낙오된 북한군 및 남노당 좌익 세력들이, 지리산과 소백산맥 일대에 숨어들어 결성한 조선 인민 유격대가 바로 빨치산으로 불렸습니다.
그들에게 지리산은 천혜의 요새였고, 그 아래 섬진강은 생사의 경계선 이었습니다.
빨치산의 전설적 지도자 남부군 사령관 이현상이, 국군과 전투경찰로 구성된 토벌대에 의하여
최후를 맞이 하면서, 결국 빨치산 투쟁은 끝나게 되었습니다.
4. 공산주의의 한반도 전래
섬진강은 지리산의 깊은 계곡물과 보성강의 물길도 묵묵히 받아 들이듯이, 동학 농민군과 빨치산의 비극적 눈물까지도 모두 품어 안고 남해로 흘러 내렸습니다.
대지주의 소작 수탈을 이기지 못했던 동학 혁명의 발발 원인은 역사를 통해서 잘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왜 빨치산의 원동력 공산주의가 우리나라에 도입된 것일까요?
1) 초기 전래와 일제 강점기 시대의 활동
한반도에 공산주의(마르크스-레닌 주의)가 처음 전래된 것은 일제 강점기라는 독특한 역사적 배경과 맞물려 있습니다.
1886년 갑신 정변으로 기존의 군왕제 조선 사회를 만민 평등의 개화 세상으로 개혁 시키려던 개화파 지식인들은, 그 개혁 정변이 실패한 후에 새로운 사상(思想)을 찾으려고 노력했습니다.
공산주의는 그들에게 단순히 정치와 경제 이론을 넘어서서, 일제의 식민 지배를 벗어나기 위한 강력한 독립 운동의 한 방편으로 다가왔습니다.
러시아 하바로스크로 진출한 이동휘와 박진순 등이 그곳에서 한인사회당을 결성했습니다.
그들은 1917년 러시아 혁명에서 레닌이 말한 *압박 받는 약소민족의 해방을 지원하겠다는 선언* 이야 말로, 바로 국권을 상실했던 조선 독립운동의 좋은 기회라고 생각하여 실천하였습니다.
이들은 국제공산당(코민테른)의 자금 지원을 받으며 초기 상해임시정부에도 참여 했습니다.
국내에서는 1925년 박헌영과 김재봉 등이 주축이 되어 조선 공산당을 비밀리에 결성 하였습니다. 이에 일제는 치안유지법을 제정하며 공산주의자들을 가혹하게 탄압했습니다.
그 결과 지도부가 와해되고, 1928년 코민테른의 지시로 조선 공산당은 공식적으로 해체되었습니다. 이후 이들은 지하로 숨어들어 노동∙농민 운동을 조직하거나 만주 일대에서 무장 항일 투쟁을 전개했습니다.
2) 해방 이후 북한의 공산화
1945년 해방이 되자 38선 이북에는 소련군이 발 빠르게 진주 했습니다.
소련은 남한처럼 직접 나서기 보다는, 자신들이 통제하기 쉬운 인물을 내세우는 간접 통치 방식을 채택했습니다.
바로 소련 앞잡이 김일성이 등장하여, 만주 항일 파르티잔 경력 빌미 하에 세력을 확장해 나갔습니다. 그는 1945년 10월 조선공산당을 창당하였습니다.
이것은 남한의 공산당과는 별개의 독자 노선 이었습니다.
1946년 무상 몰수∙무상 분배 토지 정책으로, 대다수 농민들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았습니다.

3) 남한의 남로당 창당과 몰락
해방이 되자 박헌영은 지하에서 나와 1945년 8월 16일 서울에서 조선공산당을 재건하였습니다. 이후 이들은 남조선로동당(남로당)을 결성하여, 박헌영이 실질적 수장이 되었습니다.
남로당은 미군정 하에서 위조지폐 사건과 대구 10∙1 폭동 사건 등을 일으켰고, 미군정이 이들을 불법화 및 압박 하였습니다.
또한 유엔 감시하 남한 단독정부 수립 계획이 가시화되자, 여순반란 사건과 제주 4∙3 사건을 일으켜서 대대적인 반대 운동을 전개 하였습니다.
결국 이런 사건들이 실패하고 남한 단독정부가 수립되자, 남로당 세력은 나아갈 길을 잃었습니다.
이에 남로당 조직은 박헌영을 필두로 대거 북한으로 월북하였습니다.
6∙25 동족상잔으로 한반도가 쑥대밭이 되고 나니, 박헌영이 김일성에 의해 전쟁의 책임을 혼자 뒤집어 쓰고 숙청된 사실은 더 이상 설명할 필요가 없습니다.
5. 섬진강이 우리에게 전하는 물소리
오늘도 섬진강 물줄기는 경상도와 전라도를 어루만지면서 유장하게 남해로 흘러 들어갑니다.
그 속에는 동학 농민혁명의 염원도 배어 있고, 지리산이 대변하는 만민 평등 공산주의의 흔적도 깊이 흘러 가는 듯 합니다.
섬진강과 지리산은 우리에게 무엇을 말하려고 할까요?
이제는 모든 것이 흘러 갔으니 다같이 손잡고 앞으로 또 앞으로 나아가자!
사상(思想)은 한 때 바로 공산주의 사상으로 인식되어 탄압을 받던 시대도 있었습니다.
AI가 사색도 해주고 행동도 거들어 주는 인공지능 국제 사고(思考) 경쟁시대에,
서로 헐뜯지 말고 협력하여 국력을 떨쳐 나가자!
섬진강 사곡(思曲)의 마지막 물줄기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