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도 주는데 왜 안 갈까?”…아파트 경로당, 고령자 발길 끌지 못하는 이유

아파트 단지 내 필수 주민공동시설로 자리 잡은 경로당이 정작 노인들의 이용률은 저조한 것으로 나타났다. 기본적인 쉼터와 식사 제공 기능은 갖췄지만, 고령자가 실제로 원하는 프로그램과 서비스가 부족하다는 지적이다. 전문가들은 경로당 운영을 현대화하고 체육·문화 활동 등 다양성을 확보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 법으로 설치 의무 있지만…활용도는 낮아
경로당은 2006년부터 100가구 이상 공동주택에 반드시 설치하도록 규정돼 있다. 그러나 설치 면적만 정해져 있을 뿐 운영·관리 방식에 대한 지침은 없어 실제 수요와 맞지 않는 경우가 많다. 2024년 기준 서울에는 3596개의 경로당이 있으며, 이 중 65.6%가 아파트 단지 안에 있다. 평균 개설 연한은 약 20년으로 노후화된 곳이 많다.
서울연구원이 서울 아파트 거주 만 60세 이상 고령자 5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89.6%가 단지 내 경로당 위치를 알고 있었지만 실제 이용자는 31.2%"에 불과했다. 즉, 10명 중 7명은 경로당이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가지 않는다는 의미다.
■ “필요 못 느껴서 안 간다” 77%
경로당을 알면서도 이용하지 않는 이유로는 ‘필요성을 못 느낀다’는 응답이 76.7%로 압도적이었다. 이어 ‘집에 있는 게 더 좋아서’(24.7%), ‘다른 사람과 어울리는 것이 불편해서’(13%) 순이었다. 반면 실제 경로당을 찾는 사람들은 ‘친구·이웃과 교류’(78.8%), ‘날씨에 상관없이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공간’(57.5%), ‘무료 또는 저렴한 식사 제공’(57.1%)을 이유로 들었다.
■ 식사 서비스는 활발…그러나 프로그램은 부족
서울시 경로당의 85.6%는 주 1회 이상 식사를 제공하고, 22.6%는 주 5일 이상 식사 서비스를 운영한다. 하지만 식사 외 활동에 참여한 경험이 있다는 응답은 55.1%에 그쳤다. 즉, 경로당이 기본적인 ‘밥상 공동체’ 역할은 하고 있으나 건강관리, 취미 활동, 오락 프로그램 등 고령자들이 적극적으로 즐길 만한 콘텐츠는 부족한 셈이다.
서울연구원은 “단순 쉼터 기능을 넘어 생활체육, 건강관리, 여가·문화 활동을 강화해야 한다”며 경로당 운영 프로그램의 다양화 필요성을 제기했다.
■ 아파트 노인, 상대적으로 건강·경제적 여유 높아
아파트 거주 노인들은 대체로 건강 상태가 양호하고 경제적 여건이 나쁘지 않은 경우가 많다. 이들은 “안전한 산책 공간이 있다”(88.0%), “쾌적한 주거 환경에 만족한다”(86.6%)는 이유로 현재 거주에 만족감을 드러냈다. 반대로 아쉬운 점으로는 병원 등 의료 접근성과 교육·문화시설 부족이 꼽혔다.
이 때문에 단순히 ‘밥을 주는 공간’만으로는 아파트 노인들의 발길을 끌기 어렵다는 해석이 나온다.
■ 제도 개선과 대안 필요
전문가들은 앞으로 아파트 단지 내 고령자 지원 서비스가 확대돼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구체적으로는 △경로당 현대화 △생활체육·문화 프로그램 확대 △재가 노인복지시설·노인의료복지시설 등 다양한 형태의 시설 도입 △고령 친화 아파트 인증제 도입 등이 대안으로 거론된다.
특히 인증제를 통해 경로당 운영 프로그램 수, 노인 친화시설 여부 등을 기준으로 아파트 단지를 등급화하고, 인증 단지에는 지원 혜택을 제공하는 방식이 제안됐다.
■ 결론
아파트 경로당은 법적 의무시설이지만, 현재는 “필요성을 못 느껴서 안 간다”는 노인이 대다수다. 단순히 식사 제공과 휴식 공간에 머물러서는 고령자들의 삶의 질을 높이기 어렵다. 이제는 고령자의 건강·여가·사회적 교류 욕구를 충족할 수 있도록 경로당을 “노인을 위한 생활문화 플랫폼”으로 재편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