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경을 넘은 사랑, ‘청계천의 성자’ 노무라 모토유키 목사 별세

일본의 사회운동가이자 목사였던 노무라 모토유키(野村基之) 목사가 향년 94세로 별세했다. 그는 한국의 가장 어두운 골목에서 가장 따뜻한 빛을 비춘 인물로 기억된다.
1958년 처음 한국을 찾은 그는 일제강점기의 잔재와 6·25 전쟁의 상흔을 목격한 뒤, 1973년 청계천 빈민가를 방문하며 본격적인 구호 활동에 나섰다. 도쿄 자택을 팔아 마련한 자금과 국제사회에서 모은 기금으로 탁아시설 건립 등 다양한 지원을 펼쳤으며, 그가 한국에 전달한 금액은 무려 7500만 엔(약 8억 원)에 달한다.
기록의 사명감, 2만 점의 사진 기증
노무라 목사는 단순한 구호를 넘어, 당시 한국 사회의 모습을 사진으로 남겼다. 청계천, 동대문시장, 구로공단 등지를 직접 발로 뛰며 촬영한 약 2만 점의 사진은 2006년 서울역사박물관에 기증되었고, 2013년 서울시 명예시민으로 선정되었다.
속죄의 무릎, 평화의 소녀상 앞에서
2012년, 그는 주한 일본대사관 앞 ‘평화의 소녀상’ 앞에서 무릎을 꿇고 일본의 과거사에 대해 공개적으로 사죄했다. 이로 인해 일본 우익 세력으로부터 살해 협박을 받았지만, 그는 끝까지 한국 사회의 약자들을 위한 활동을 멈추지 않았다.
아들에게 남긴 마지막 소원
그의 아들 마코토는 “아버지는 수입이 줄어든 노후에도 저축을 이어가며 기부를 계속했다”며 “성경의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는 말씀을 날마다 실천하셨다”고 회고했다. 노무라 목사의 마지막 소원은 “아들이 한국 장애어린이를 위해 봉사하는 삶을 살아가길 바란다”는 것이었다.
국경을 초월한 박애 정신
2015년, 그는 제1회 아시아 필란트로피 어워드 수상자로 선정되며 “속죄의 여행은 끝나지 않았다. 여생을 더욱 겸허하게 한국인들에게 배우고 사랑하고 싶다”고 밝혔다.
노무라 목사의 삶은 ‘우리나라 사람도 제대로 못 챙긴다’는 자조를 넘어, 인간애의 본질을 일깨워준다. 용서는 잘못을 시인할 때 시작된다. 일본이 저지른 잘못을 대신하며 한국인들에게 속죄하며 일생을 바친 그의 헌신은 국적을 초월한 사랑의 실천이었으며, 그가 남긴 발자취는 한국 사회의 기억 속에 오래도록 살아 숨 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