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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상 아이돌, 현실 무대를 넘어 글로벌 시장을 장악하다

산타뉴스 김란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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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덤 열광·25조 원 시장 전망…저작권과 윤리 논의 불가피

“화면 속 스타도 진짜 스타다”

 

무대 위를 화려하게 수놓는 것은 더 이상 인간 아이돌만이 아니다. 최근 전 세계 음악 산업의 흐름은 ‘가상 아이돌’이라는 새로운 주인공을 맞이하고 있다. 이들은 애니메이션처럼 탄생했지만, 실제 공연장에 등장해 수천 명의 팬들과 함께 노래하고 춤추며 ‘현실 스타’ 못지않은 인기를 누리고 있다.
 

뤼텐이(翎天依) [사진제공 나무위키]
중국의 가상 가수 중국의 가상 가수 중국의 가상 가수 뤼텐이(翎天依) [사진제공 나무위키]

중국의 가상 가수 "뤼텐이(翎天依)"는 이미 300만 명에 달하는 팬덤을 확보했다. 온라인 콘서트 티켓은 순식간에 매진되고, 실제 음악 축제에 참가해 다른 가수들과 어깨를 나란히 한다. 

하츠네 미쿠 Append는 하츠네 미쿠 탄생 2주년 기념으로 제작되어 2010년 4월 30일에 발매됨 [사진제공 나무위키]
일본의 대표적 가상 아이돌 하츠네 미쿠 Append는 하츠네 미쿠 탄생 2주년 기념으로 제작되어 2010년 4월 30일에 발매됨 [사진제공 나무위키]

 일본의 대표적 가상 아이돌 하츠네 미쿠는 ‘코첼라Coachella)’와 같은 세계적 음악 페스티벌 무대에 오르며 글로벌 인기를 입증했다. 이제 가상 아이돌은 더 이상 일부 마니아층의 문화가 아닌, 대중음악 산업의 한 축으로 성장하고 있다.

한국의 가상 보이그룹 '플레이브(Plave)'[사진제공 나무위키]

한국 팬덤, “버추얼이라 더 가깝다”

 

한국 역시 분위기가 뜨겁다. 플레이브(Plave) 같은 가상 보이그룹은 실제 아이돌 못지않은 인기를 얻으며 음원 차트에 이름을 올렸다. 팬들은 이들을 단순한 가상의 존재로 여기지 않는다.


서울 응암동에서 만난 팬 황유빈 씨는 “버추얼 아이돌이라서 낯설 수 있지만, 오히려 더 친근하게 다가온다”며 “사생활 논란이나 스캔들 걱정 없이 오롯이 음악과 무대에 집중할 수 있어 좋다”고 말했다. 다른 팬은 “화면 속에만 존재한다는 점이 독특한 매력”이라며 “실제 사람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팬덤 활동도 기존 아이돌 못지않다. 온라인 팬미팅, 가상 팬사인회, 심지어 굿즈 제작까지 이뤄지고 있으며, 가상 캐릭터임에도 팬들은 현실의 스타처럼 열광하고 있다.

 

글로벌 시장, 7년 뒤 25조 원 규모

 

시장조사기관 ‘글로벌인포메이션’은 세계 버추얼 아티스트 시장이 2021년 약 2조 3천억 원 규모에서 2028년에는 25조 원 규모로 성장할 것이라 전망했다. 이는 10배가 넘는 폭발적 성장이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성장을 가능케 한 요인으로 ▲AI와 모션캡처 기술의 발달 ▲온라인 콘서트 플랫폼 확산 ▲코로나19 이후 비대면 공연의 일상화 ▲MZ세대의 디지털 친화적 소비 성향 등을 꼽는다. 가상 아이돌은 실제 공연장뿐 아니라 메타버스 공간에서도 활발히 활동하며 팬덤을 확대하고 있다.

 

저작권·윤리 논의 본격화

 

그러나 시장의 성장과 함께 해결해야 할 과제도 만만치 않다.
차우진 엔터문화연구소 대표는 “저작권과 수익 배분 문제가 정리되지 않으면 혼란이 발생할 수 있다”며 “제도를 규제하거나 완화하는 방식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예컨대 AI가 생성한 음악의 저작권은 누구에게 귀속될까? 가상 아이돌의 명예훼손은 현실 인물과 동일하게 다뤄야 할까? 이처럼 전례 없는 문제들이 쏟아지고 있어 법·제도적 논의가 시급하다.

 

엔터 산업의 새로운 전환점

 

가상 아이돌은 단순히 새로운 ‘트렌드’가 아니라, 엔터테인먼트 산업 전체의 판도를 흔들고 있다. 팬덤 소비 방식도 변화하고 있다. 기존 아이돌은 스케줄, 체력, 사생활 문제로 제약이 많았지만, 가상 아이돌은 24시간 팬과 소통할 수 있고, 팬들의 의견을 실시간 반영해 ‘맞춤형 스타’로 진화할 수 있다.
또한 글로벌 팬덤은 국경의 제약이 없다. 일본에서 열린 하츠네 미쿠 콘서트에는 한국·미국·유럽 팬들이 몰렸고, 중국의 뤼텐이는 아시아 전역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온라인 콘서트를 개최한다. 이는 K-팝을 비롯한 전통적 음악 시장에도 큰 자극이 되고 있다.

 

미래는 ‘공존의 시대’

 

전문가들은 현실 아이돌과 가상 아이돌이 경쟁하기보다 공존과 협업으로 나아갈 것으로 전망한다. 실제 아이돌이 무대에 서고, 옆에서 가상 아이돌이 함께 공연하는 형태가 대표적이다. 이는 이미 일부 콘서트에서 시도되고 있다.
향후 AI 아티스트가 광고 모델, 드라마·영화 출연 등으로 활동 영역을 넓히면, 지금까지의 ‘스타 시스템’은 근본적으로 재편될 수 있다.

 

 새로운 질문의 시대

 

가상 아이돌의 등장은 음악 산업의 혁신인 동시에 새로운 질문을 던진다. “스타란 무엇인가?”, “팬덤의 본질은 어디에 있는가?”, “창작의 주체는 누구인가?” 같은 문제다.


확실한 것은, 가상 아이돌은 단순한 유행을 넘어 산업적·문화적 전환점이 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현실과 가상이 교차하는 이 새로운 무대에서, 팬덤은 이미 답을 내리고 있다. 그들의 열광은 곧 ‘진짜’라는 말보다 더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김란희 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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