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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기란 사람을 이해하는 것

류재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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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만 배우 유해진의 성공 신화
한 무명의 청년이 천만 배우로 성장하기까지 그 뒤에는 그를 믿고 가르침을 준 스승이 있었다.                      사진 / 왕과 사는 남자

무명의 청년을 천만 배우로  — 스승이 알아본 재능, 유해진의 성공 신화


 

한국 영화계에서 ‘믿고 보는 배우’라는 별칭이 가장 잘 어울리는 배우 가운데 한 사람이 유해진이다. 

특유의 인간적인 연기와 현실감 있는 캐릭터 표현으로 관객의 사랑을 받아온 그는 이제 천만 관객 영화의 단골 배우로 자리 잡았다. 그러나 지금의 성공 뒤에는 한 명의 스승이 있었다. 서울예술대학교에서 연기를 가르쳤던 송혜숙 교수다. 두 사람의 인연은 한 무명의 청년이 자신의 길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시작됐다.


 

유해진은 충북 청주 출신으로, 어린 시절부터 화려한 스타와는 거리가 먼 평범한 학생이었다. 오히려 외모나 환경 때문에 연기자의 길이 쉽지 않을 것이라는 말을 자주 들었다고 한다. 그러나 영화와 연극에 대한 열정은 누구보다 컸다. 대학 진학을 고민하던 시절 그는 서울예술대학교 연극과에 도전했고, 그곳에서 송혜숙 교수를 만났다.


 

송 교수는 당시 입시와 수업을 통해 많은 학생을 지도했지만, 유해진을 처음 본 순간 그의 눈빛에서 특별한 가능성을 발견했다고 한다. 화려한 외모나 과장된 연기 대신, 생활 속에서 자연스럽게 나오는 인간적인 표현력이 돋보였기 때문이다. 한 수업에서 즉흥 연기를 시켰을 때, 유해진은 준비된 대사 없이도 평범한 인물을 현실적으로 표현해 교실을 웃음과 감동으로 채웠다.


 

송 교수는 그날 이후 ‘연기는 잘하려고 애쓰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이해하는 것’이라며 유해진의 장점을 살리는 방향으로 지도했다고 전해진다. 그는 학생들에게 늘 ‘자기 삶을 연기로 가져오라’고 강조했는데, 유해진은 그 말을 가장 충실하게 받아들인 제자 중 한 명이었다.


 

하지만 대학 시절 이후의 길은 결코 순탄하지 않았다. 졸업 후에도 무명 생활은 길었다. 연극 무대와 작은 영화 단역을 오가며 생활비조차 걱정해야 하는 날들이 이어졌다. 그 시절 유해진은 포기하고 싶었던 순간마다 학교에서 들었던 송 교수의 말을 떠올렸다고 한다. ‘너는 결국 배우가 될 사람이다. 늦을 뿐이다.’


 

그 말은 유해진에게 일종의 버팀목이 됐다. 그는 포기하지 않고 작은 역할에도 성실하게 임했고, 결국 영화 ‘블랙잭’, ‘주유소 습격사건’ 등을 통해 얼굴을 알리기 시작했다. 이후 ‘왕의 남자’, ‘타짜’, ‘베테랑’, ‘택시운전사’ 등 굵직한 작품에서 강렬한 캐릭터를 남기며 한국 영화의 대표적인 배우로 성장했다.


 

특히 영화 ‘왕의 남자’는 유해진에게 중요한 전환점이었다. 그는 극 중 육갑 역을 맡아 특유의 현실감 있는 연기를 선보였고, 영화는 천만 관객을 돌파하며 한국 영화사에 기록을 남겼다. 이 작품을 통해 그는 대중에게 확실히 각인됐고, 이후 다양한 장르에서 주연과 조연을 넘나드는 배우로 자리 잡았다.


 

유해진은 여러 인터뷰에서 스승 송혜숙 교수에 대한 고마움을 자주 언급해 왔다. 그는 ‘연기를 잘하는 법보다 사람을 이해하는 법을 가르쳐 주신 분’이라며 ‘그때의 가르침이 지금까지 제 연기의 뿌리가 되고 있다’고 말했다.


 

교육계에서도 이 이야기는 자주 인용된다. 한 연극학 교수는 ‘스타 배우의 탄생에는 재능도 중요하지만 그것을 알아보고 키워주는 스승의 역할이 결정적’이라며 ‘유해진과 송혜숙 교수의 관계는 예술 교육이 어떤 힘을 가질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라고 평가했다.


 

오늘날 유해진은 천만 배우라는 타이틀을 넘어 한국 영화계에서 가장 인간적인 배우로 불린다. 화려한 스타성보다는 삶의 냄새가 묻어나는 연기를 보여주는 그의 힘은, 어쩌면 젊은 시절 한 스승이 발견했던 ‘사람을 이해하는 능력’에서 시작된 것인지도 모른다.


 

한 무명의 청년이 천만 배우로 성장하기까지, 그 뒤에는 언제나 ‘너는 결국 배우가 될 사람’이라고 믿어 준 스승이 있었다. 유해진의 성공 신화는 결국 재능과 노력, 그리고 스승과 제자의 신뢰가 만들어낸 한국 영화계의 따뜻한 이야기로 남고 있다.

 

류재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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