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값은 어른이 미리 냈습니다."

고3 수험생들이 대학수학능력시험을 마친 직후, 한 독립서점에 십여 명의 학생이 동시에 모였다.
해당 서점은 지난 2월부터 어른들이 책값을 선결제하고, 청소년이 원하는 책을 한 권씩 가져가는 ‘선결제 책 선물’ 프로젝트를 운영해왔다.
처음엔 지역 주민 몇몇이 시작했지만, 참여가 늘면서 최근에는 한 달 최대 70권이 학생들에게 전달되고 있다.
■ “읽고 싶은 책을 고르는 경험을 선물하고 싶어서”
서점 대표는 “공부하느라 바빴던 학생들이 잠시 멈춰 자기 마음을 들여다볼 순간이 있었으면 했다”며 시작 배경을 설명했다.
한 단골 손님이 매달 작은 금액이라도 후원하겠다고 나선 것이 프로젝트의 출발점이었다. 이후 SNS를 통해 소식이 알려지며 참여자가 꾸준히 늘어 현재는 전국 40여 곳의 동네 책방이 비슷한 방식으로 동참하고 있다.
■ “언젠가 나도 누군가에게 이 마음을 건네고 싶다”
책을 받은 학생들의 반응은 기대보다 더 깊었다.
한 학생은 “수험 기간 동안 응원받는다는 느낌이 적었는데, 책을 통해 어른들의 진심을 느꼈다”며 훗날 자신도 같은 나눔을 해보고 싶다고 했다.
또 다른 학생은 “선물받은 책을 여러 번 돌려 읽는다”며 “낯선 어른이 준 따뜻함이 오래 남는다”고 말했다.
■ 참여하는 사람들의 사연도 다양하다
기부자 중에는 청소년 시절에 마음껏 책을 읽을 여유가 없었다는 20대 직장인,
그리고 “딸이 책을 받고 너무 좋아했다”며 그 다음 달 바로 후원에 참여한 학부모도 있었다.
이들은 ‘기부’라는 표현보다 **“어른이 청소년에게 건네는 작은 격려”**라는 말이 더 어울린다고 말한다.
■ 책방이 고수하는 단 하나의 원칙
책을 고를 때 보호자는 개입하지 않는다.
학생이 스스로 선택하고, 때론 실패하는 경험도 허용한다는 원칙 때문이다.
서점 대표는 “어른들의 선결제가 아이들에게 ‘괜찮다, 실패해도 된다’는 메시지를 주는 셈”이라고 설명했다.
조용히 선결제하고 돌아가는 어른들의 마음을 보니, 산타는 이렇게 느꼈다.
누군가의 하루를 밝히는 일은 큰 선물이 아니라 작은 손길에서 시작된다.
아이들이 책 한 권을 고르며 자신과 마주하는 그 순간을 지켜보는 일은, 세상을 조금 더 따뜻하게 만드는 작업처럼 보였다.
혹시라도 망설이는 이가 있다면, 산타는 말없이 문앞에 작은 봉투 하나를 두고 갈 것이다.
그 봉투가 또 다른 아이에게 “괜찮다, 네가 선택해도 된다”는 메시지가 되길 바라면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