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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은 무엇을 준비하고 —일본 영화 ‘플랜 75’가 남긴 불편한 질문

성연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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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고령사회, 출산이 아니라 ‘역할’의 문제다
영화 <플랜75> 티저 포스터
영화 <플랜75> 티저 포스터

초고령사회가 현실이 된 지금, 노년의 삶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에 대한 질문이 점점 무거워지고 있다. 일본 영화 플랜 75는 이 질문을 한 발 더 밀어붙인다.


75세가 되는 순간, 국가로부터 한 통의 안내가 도착한다. 삶을 스스로 마감할 수 있도록 돕는 ‘플랜 75’ 제도에 대한 설명이다. 신청하면 상담원이 배정되고, 절차는 친절하고 체계적으로 진행된다. 주인공은 생계와 고립 속에서 점점 선택의 경계로 내몰리고, 주변 인물들 역시 각자의 이유로 이 제도와 얽히게 된다. 작품은 극적인 장치 대신 담담한 시선으로, 초고령사회에서 개인의 삶과 존엄이 어떻게 흔들릴 수 있는지를 조용히 드러낸다.


이 영화를 보고 나면 마음이 불편해진다. 그 이유는 낯섦이 아니라 익숙함에 가깝다. 이미 우리는 비슷한 질문 앞에 서 있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은 2026년, 65세 이상 인구 비중이 20%를 넘어서며 초고령사회에 진입했다. 줄어드는 노동력, 늘어나는 돌봄 부담, 그리고 길어지는 노년의 시간. 숫자는 단순하지만, 현실은 결코 가볍지 않다.


지금까지의 대응은 비교적 명확했다. 더 낳게 하는 것. 출산정책에 자원이 집중된 이유다. 방향 자체는 틀리지 않다. 다만 속도의 문제에서 한계가 드러난다. 인구 구조는 정책보다 훨씬 느리게 움직인다.


그래서 질문은 바뀐다. 앞으로 태어날 인구가 아니라, 이미 존재하는 인구를 어떻게 할 것인가.


현장에서 힌트는 의외로 분명하다. 이용자가 급감하던 한 지역 커뮤니티 공간은 시설을 개선해도 달라지지 않았다. 그러나 비교적 젊은 고령층이 참여하고, 활동 중심 구조가 만들어지자 분위기가 바뀌었다. 사람은 다시 모였고, 공간은 기능을 회복했다.


이 변화는 단순하다. 문제는 부족이 아니라 배치였다. 시설이 아니라 역할이었다.


일본은 이 문제를 먼저 겪었고, 비교적 현실적인 선택을 했다. 정년을 늘리고, 다시 일할 수 있게 만든 것이다. 이는 단순한 생계 유지가 아니라, 사회 안에 남아 있을 수 있는 구조를 설계한 접근이다.


물론 쉬운 해법은 아니다. 고령층 일자리는 여전히 단순 노동에 집중돼 있고, 세대 간 갈등이라는 변수도 존재한다. 그럼에도 방향은 분명하다. 완전히 물러나게 둘 것인가, 아니면 계속 참여하게 할 것인가.


노인을 보호의 대상으로만 보는 시선은 익숙하다. 그러나 그 시선은 동시에 이들을 사회 밖으로 밀어내는 방식이기도 하다. 보호는 필요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플랜 75는 하나의 극단을 보여준다. 선택이 제도가 되는 사회. 그러나 그 이전 단계에서 우리가 만들 수 있는 선택은 훨씬 많다.


노년을 비용으로 남길 것인가, 아니면 역할로 전환할 것인가.


초고령사회는 이미 시작됐다. 이제 남은 것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다. 고령을 비용으로 둘 것인지, 함께 살아가는 주체로 설계할 것인지의 문제다.

 

성연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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