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일한 박사, 전 재산을 사회에 남기다
![유일한 박사 [사진제공 나무위키]](https://santanews.cdn.presscon.ai/prod/140/images/20260305/1772643841913_126611839.jpg)
1971년 4월, 국내 제약기업 유한양행 창립자 유일한 박사가 세상을 떠났다.
그의 유언장은 한국 사회에 큰 울림을 남겼다. 자녀에게 재산을 물려주지 않고 대부분의 재산을 교육과 공익 재단에 환원하겠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 국내 재계에서는 보기 드문 결정이었다.
기업을 일군 창업자가 개인이 아닌 사회를 상속자로 선택한 사례였기 때문이다.
그의 결정은 단순한 기부를 넘어, 한 기업가가 평생 지켜온 철학의 마지막 선언이었다.
가난한 이민 청년에서 기업가로
유일한 박사의 삶은 한국 근현대사의 굴곡과 함께했다.
1895년 평안남도에서 태어난 그는 어린 시절 미국으로 건너갔다. 당시 조선 청년이 홀로 해외에서 학업을 이어가는 일은 쉽지 않았다. 그는 생계를 위해 다양한 일을 하며 공부를 이어갔다.
결국 미국 미시간대학교에서 학업을 마쳤다. 한국인으로서는 매우 이른 시기에 서구식 대학 교육을 받은 사례였다.
졸업 후 그는 곧바로 사업에 뛰어들었다. 당시 미국 한인 사회의 식문화와 소비 패턴을 분석해 숙주나물 공급 사업을 시작했다. 이 사업은 빠르게 성장했고 그는 젊은 나이에 백만장자 사업가로 이름을 알렸다.
하지만 그의 관심은 개인적 성공에만 머물지 않았다.
“기업은 사회의 것”이라는 철학
1926년 그는 한국에서 유한양행을 설립했다.
당시 조선 사회는 의약품을 대부분 수입에 의존하고 있었다.
유일한 박사는 “국민 건강을 지키는 산업이 필요하다”는 생각으로 제약 사업을 시작했다.
그는 기업 운영에서도 독특한 원칙을 세웠다.
*기업의 이익은 사회와 함께 나눌 것
*직원과 소비자를 동시에 존중할 것
*투명한 경영을 통해 신뢰를 쌓을 것
이러한 경영 철학은 훗날 한국 기업 윤리의 대표 사례로 자주 언급된다.
뒤늦게 알려진 비밀 임무
그의 삶에는 오랫동안 알려지지 않았던 또 다른 이야기도 있다.
1945년 그는 미국 전략정보국(OSS)이 진행한 비밀 작전
‘냅코 프로젝트(NAPKO Project)’에 참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작전은 한국광복군과 협력해 한반도에 침투하는 첩보 임무였다.
당시 그의 나이는 약 50세였다. 이미 사업가로 안정된 삶을 살고 있던 시기였다.
그럼에도 그는 가족에게조차 알리지 않은 채 위험한 임무에 참여했다.
이 사실은 그의 사후 약 20년이 지나서야 공개됐다.
많은 사람들은 “기업가 이전에 한 시대의 시민이었다”는 평가를 남겼다.
전 재산 사회 환원, 그 마지막 선택
1971년 세상을 떠난 유일한 박사는 유언을 통해 자신의 철학을 다시 한번 분명히 했다.
*재산 대부분을 교육·사회 공익 재단에 기부
*기업 경영권은 개인이 아닌 전문 경영 체제로 운영
*가족에게는 최소한의 생활비만 남김
그가 남긴 재산은 장학사업과 교육 지원에 쓰이도록 설계됐다.
이는 기업가의 부가 사회로 환원되는 대표적인 사례로 평가된다.
그가 세운 유한양행 역시 이후 전문경영인 체제와 공익 중심 경영을 이어가며
한국 제약 산업의 대표 기업으로 성장했다.
한 사람의 삶이 남긴 질문
유일한 박사의 이야기는 화려한 성공담으로만 기억되지 않는다.
그는 사업가였고, 독립운동을 돕는 협력자였으며, 마지막에는 재산을 사회에 돌려준 기부자였다. 여러 역할 속에서도 공통적으로 드러나는 것은 “공익”이라는 가치였다.
그의 선택은 오늘날에도 질문을 던진다.
기업은 누구의 것인가. 성공은 어디로 돌아가야 하는가.
유일한 박사는 생전에 이런 말을 남긴 것으로 전해진다.
“기업의 이익은 사회가 만든 것이다.”
세월이 흐른 지금도, 그 문장은 여전히 조용한 울림을 남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