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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Z 청년들, 버스 운전대 잡는다

류재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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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벌 보다는 현실 직시형 직업 선택
청년들이 특정 직업으로 몰리는 현상 자체보다 왜 그런 선택을 할 수 밖에 없었는지를 우리 사회가 돌아 보아야 한다. 

 

청년들, 버스 운전이 즐겁다

초봉 5000만원·워라밸 개선 - 대학 중퇴 후 기사도 늘어


 

‘처음엔 부모님이 반대하셨어요. 하지만 지금은 오히려 잘 선택했다고 하십니다.’

서울 시내버스 기사로 근무 중인 26세 김모 씨는 대학 2학년을 마치고 학교를 그만둔 뒤 버스 운전대를 잡았다. 김 씨의 연봉은 각종 수당을 포함해 약 5000만 원. 또래 친구들이 취업 준비와 단기 계약직을 전전하는 사이, 그는 정규직 신분으로 안정적인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청년층의 버스 운전직 진입이 눈에 띄게 늘고 있다. 버스업계에 따르면 최근 3년간 20·30대 신규 버스 기사 수는 약 37% 증가했다. 과거 중·장년층의 전유물로 여겨졌던 버스 운전직이 청년들의 새로운 ‘현실적 선택지’로 떠오르고 있는 것이다.
 

준공영제 이후 달라진 버스 기사 처우
 

이 같은 변화의 배경에는 버스 준공영제 이후의 처우 개선이 있다. 지자체 재정 지원이 확대되면서 임금 체계가 안정됐고, 초봉 역시 대폭 상승했다. 서울과 수도권의 경우 초임 연봉이 4500만~5000만 원 수준에 이른다. 야간·주말 수당과 상여금을 포함하면 체감 소득은 더 높아진다.

 

근무 여건도 과거와는 다르다. 교대제 도입과 운행 스케줄 표준화로 장시간 노동이 줄었고, 월 8~9회 이상의 휴무가 보장된다.

 김 씨는 ‘주 5일 근무에 가까운 생활이 가능하고, 퇴근 후 개인 시간을 확보할 수 있다는 점이 가장 만족스럽다’고 말했다.
 

학벌 경쟁대신 ‘생활 안정’을 택한 청년들
 

특히 주목되는 점은 대학 중퇴 후 버스 기사로 진로를 바꾸는 청년들이 늘고 있다는 사실이다. 지방 사립대에 재학 중이던 24세 박모 씨는 ‘졸업 후 취업 가능성과 임금을 계산해보니 불확실성이 너무 컸다. 차라리 기술을 익혀 안정적인 직업을 갖는 게 낫다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이를 청년 세대의 가치관 변화로 해석한다. 노동시장 전문가 이모 교수는 ‘과거에는 화이트칼라 선호가 강했지만, 현재 청년들은 소득 안정성과 삶의 균형을 중시한다’며 ‘고학력이라도 저임금·불안정 노동을 피하려는 경향이 뚜렷해졌다’고 설명했다.
 

사회가 만든 선택지의 변화

 

버스 기사 직종의 청년화는 개인 선택을 넘어 사회 구조 변화의 결과라는 분석도 나온다. 

고용 시장에서 양질의 일자리가 줄어드는 반면, 공공성이 강화된 운수 분야는 상대적으로 안정성을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준공영제는 노동 강도 대비 보상이 낮다는 기존 인식을 상당 부분 바꿔놓았다.

 

다만 우려도 있다. 청년 유입이 늘면서 장기 근속을 위한 경력 관리와 안전 교육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 한 버스회사 관계자는 ‘젊은 기사들은 적응이 빠르지만, 승객 안전과 직결되는 직업인 만큼 체계적인 교육과 멘토링이 필수적’이라고 강조했다.
 

‘버스 운전대’가 상징하는 청년의 현실
 

청년들이 버스 운전대를 잡는 현상은 단순한 직업 선택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불확실한 미래 속에서 가능성보다 ‘확실성’을 택하는 세대의 현실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안정적인 소득, 예측 가능한 삶, 그리고 워라밸. 이 세 가지 조건을 충족하는 일자리가 많지 않은 현실에서 버스 운전직은 청년들에게 하나의 대안이 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청년들이 특정 직업으로 몰리는 현상 자체보다, 왜 그런 선택을 할 수밖에 없는지를 사회가 돌아봐야 한다’며  ‘공공 영역뿐 아니라 민간 부문에서도 안정적이고 지속 가능한 일자리를 확대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버스 운전석에 앉은 청년 기사들의 모습은 오늘날 한국 사회가 청년에게 어떤 길을 열어주고 있는지를 묻는 하나의 풍경이 되고 있다.


 

류재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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