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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아들은요, 헬리콥터맘 극성

류재근 기자
입력
학부모가 교수에게 직접 전화
대학은 스스로 성인이 되어가는 현장이다. 학생들이 마음껏 꿈을 펼칠 수 있도록 학부모는 한 발 뒤로 물러서서 그 성장을 바라볼 수 있는 여유가 필요하다.


 

성적 왜 이래요? — 교수실로 걸려오는 부모 전화 ,     대학가, 헬리콥터맘 대응 매뉴얼까지


 

‘교수님, 우리 애가 그렇게까지 못했을 리가 없는데요.’

서울의 한 사립대 A교수는 최근 학기 말마다 낯선 번호로 걸려오는 전화를 경계한다. 학생이 아니라 학부모인 경우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성적, 출석, 과제 평가를 두고 학부모가 교수에게 직접 항의하거나 재평가를 요구하는 일이 늘면서 대학들이 이른바 ‘헬리콥터맘(과잉 개입 학부모)’ 대응에 나서고 있다.


 

학생 대신 부모가 협상 — 현장 사례 늘어

 

대학 현장에서 보고되는 유형은 다양하다. 

 

첫째는 성적 이의 제기 대행이다. 

학생 본인이 이의 신청 절차를 밟기보다 학부모가 교수 개인 연락처나 학과 사무실로 연락해 ‘우리 아이 장학금이 달렸다’, ‘취업에 불이익’을 강조하며 압박하는 방식이다. 

둘째는 수업 운영 간섭이다. 

시험 범위·난이도, 과제량, 팀플 운영을 두고 아이에게 과도한 부담이라며 수정 요구가 들어온다. 

셋째는 징계·출결 민원이다. 

결석 누적이나 부정행위 의심 상황에서 학부모가 ‘사정이 있었다’,  ‘다른 학생도 그랬다’는 식으로 사실관계 다툼을 시도하는 사례도 있다.
 

지방의 한 국립대에서 학생지도를 맡는 B교수는 ‘수업 상담 시간을 잡아도 정작 학생은 말이 없고, 옆에서 부모가 대신 설명하는 경우가 있다.  대학이 성인 학습자 중심으로 운영된다는 원칙이 흔들리는 느낌’이라고 말했다. 

 

일부 대학은 교수 개인 연락처 노출을 최소화하고, 민원은 학생지원센터나 교무처로 일원화하도록 안내문을 배포하는 등 차단 장치를 강화하는 분위기다.


 

취업 불안, 등록금 부담의  ‘고객’ 인식
 

전문가들은 배경으로 취업 경쟁의 격화와 등록금·생활비 부담을 꼽는다. 

성적이 장학금과 직결되고, 인턴·대외활동·대학원 진학까지 영향을 미치면서 학부모가 투자 대비 성과를 관리하려는 심리가 커졌다는 것이다. 

 

동시에 대학을 교육기관이라기보다 서비스 제공자로 보는 소비자 관점이 확산된 점도 원인으로 지적된다. ‘비싼 등록금을 내니 항의할 권리가 있다’는 인식이 교수 개인을 향한 직접 압박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설명이다.
 

공정성 훼손·교권 침해·학생 성장 기회 박탈
 

문제는 단순한 불편을 넘어선다. 

첫째, 평가의 공정성이 흔들린다. 

강한 민원을 제기한 학생에게만 예외가 생기면, 조용히 절차를 따르는 다수 학생이 상대적 박탈감을 느낀다. 

 

둘째, 교권 침해와 행정 비용 증가다.

 교수는 수업·연구 외에 민원 대응에 시간을 소모하고, 학과는 누가 전화 받았는지, 어떤 답을 했는지를 기록하느라 업무가 늘어난다.

 

 셋째, 가장 근본적으로는 학생의 성인기로의 이행이 지연된다. 

대학은 스스로 이메일을 쓰고 면담을 신청하며 책임 있게 협상하는 법을 배우는 공간인데, 부모가 대리 협상자가 되면 학생은 실패·피드백을 소화할 기회를 잃는다.
 

교육사회학자 C교수는 ‘과잉 보호는 단기적으로 불안을 줄여줄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자기조절능력과 문제해결력을 약화시킨다. 대학에서까지 부모가 전면에 나서는 순간, 학생은 성인이 아니라 관리 대상으로 남는다’고 말했다.


 

대학측 원칙은 학생과 소통, 민원은 시스템으로
 

대학들이 내놓는 해법은 크게 세 갈래다.

 

첫째, 소통 창구의 공식화다. 

성적·출결·징계 관련 문의는 학생 본인 인증을 거쳐 온라인 시스템이나 공식 메일로만 받도록 하고, 전화 민원은 기록 가능한 창구로 전환한다.

 

둘째, 교수 보호 장치다. 

교수 개인 번호 노출을 줄이고, 악성 민원은 법무·감사 라인이 지원하도록 내부 지침을 만든다.

 

셋째, 학생 역량 강화다. 

신입생 대상 ‘대학 생활 커뮤니케이션’ 교육에서 이의신청 절차, 공식 메일 작성법, 면담 예절을 가르쳐 학생이 직접 문제를 처리하도록 돕는다.
 

전문가들은 학부모에게도 역할 전환을 주문한다. 

상담이 필요하다면 왜 이런 점수를 받았니?가 아니라 어떤 부분이 부족했는지 교수에게 어떻게 질문할래?로 방향을 바꾸라는 것이다. 

 

대학은 성인이 되는 연습장이다. 헬리콥터맘을 ‘퇴치’한다는 말보다 학생이 스스로 날 수 있도록 보호자의 손을 한 발 뒤로 옮기는 문화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류재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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