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지산에서 일본을 생각하다

고요한 호수 위에 비친 일본 — 그리고 후지산의 그림자
시즈오카의 쇼지호에 서면 모든 소리가 한 겹 얇아진다.
오랜 친구들과의 모처럼 일본 여행길에 후지산 의 거대한 얼굴을 다양한 시각에서 만났다.
잔잔한 수면 위로 후지산이 거울처럼 내려앉는다.
그 풍경은 완벽에 가까운 정적이다. 그러나 이 고요함은 결코 평온함만을 뜻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속에는 언제든 깨어날 수 있는 자연의 거대한 숨결이 잠들어 있다.
일본인들은 오래전부터 이 산을 두려움과 경외의 시선으로 동시에 바라보았다.
화산은 파괴의 상징이지만 동시에 재생과 순환의 은유이기도 하다. 그래서일까 이곳 사람들의 삶에는 유난히 ‘순응’과 ‘체념’이 교차한다. 자연 앞에서 인간은 작아지고, 삶은 결국 받아들이는 것이라는 인식이 깊게 배어 있다.
한때 일본은 세계를 놀라게 한 경제 대국이었다. 고도성장의 시대, 도시들은 밤새 불을 밝히며 번영을 노래했고, 기술과 산업은 세계의 기준이 되었다.
그러나 지금, 그 빛은 한층 옅어졌다. 장기 침체와 저성장, 고령화의 그늘 속에서 사회는 점점 속도를 잃어가고 있다. 젊은이들은 미래를 확신하지 못한 채 조용히 현실과 타협하고, 기업은 과거의 영광을 반복 재생하는 데 머무르는 듯하다.
그렇다고 해서 일본이 무너졌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오히려 이 나라는 여전히 ‘버티는 힘’을 알고 있다.
큰 변화를 외치기보다, 작은 균형을 유지하며 천천히 나아가는 방식. 그것은 어쩌면 화산 아래에서 살아온 긴 시간의 산물일지도 모른다. 언제 터질지 모르는 불안 속에서도 일상을 유지해야 했던 경험이 사회 전체에 신중함과 보수성을 각인시킨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그 신중함이 지나치게 굳어버렸다는 데 있다. 변화는 두려움이 되었고, 도전은 위험으로 치환되었다. 그 결과 일본 사회는 점점 활력을 잃고 새로운 물결을 만들어내는 힘이 약해졌다. 후지산처럼 아름답지만 동시에 움직이지 않는 거대한 존재처럼 말이다.
쇼지호의 물결은 거의 흔들리지 않는다. 바람이 불어도 금세 가라앉는다. 그 위에 비친 후지산은 늘 같은 모습으로 서 있다. 그러나 우리는 알고 있다. 그 산이 살아 있다는 것을, 그리고 언젠가는 다시 숨을 내쉴지도 모른다는 사실을말이다.
일본 역시 그렇지 않을까. 지금은 조용히 숨을 고르고 있을 뿐, 완전히 멈춘 것은 아닐지도 모른다. 다만 중요한 것은 그 다음의 선택이다. 다시 불을 지필 것인가, 아니면 이 고요함 속에 머물 것인가.
후지산을 바라보며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진짜 두려운 것은 화산의 폭발이 아니라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시간일지도 모른다고.
